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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게시판

오종렬 1


한 시대가 한 사람의 생을 물을 때는

그 사람 생의 시작과 끝을 위로하지만


역사가 한 사람의 생을 돌아볼 땐

그 한 사람의 생이 제 조국과 민중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본다


누구나 불면의 시대 한 고비고비마다 

제 삶 전부를 도려내었다 하겠지마는


역사는 늘 생의 전체가 온전히

이어졌는가를 물을 뿐이다


그것이 역사의 엄중함이다


역사의 저울은

한 사람의 무게보다 그 한 사람이 속한 

집단의 입장과 태도를 총화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존엄함이다


그래서 그의 생 마지막은 

나중에 기록될 것이다


지도를 일치하고

동지로 맺어진 집단의 영생과 함께


그때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민족민주전선 만세

조국통일 만세



오종렬 2


그의 아버지는 나주인민위원회

농민위원장 오정근이다


그의 누이는 일제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찍 결혼을 했고 

그의 형은 일제에 징병되었다


그의 유년기 마지막 기억은

미군의 점령을 알리는 

포고령이 적힌 삐라였다


아버지와 외삼촌과 누이가 감옥에 갔고

고문을 당한 어머니는 여성을 잃었다


해방은 갑작스러웠지만

분단은 계획되었다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선생이 된 것처럼


꿈을 꾸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꿈꾸는 대로 된다는 걸 믿지도 않았다


꿈은 올라갈 계단의 끝이 아니라

걸어 갈 계단의 처음이라는 것을

그는 서럽게 배웠다



오종렬 3


사람들은 그를 큰 산으로 대했지만

그는 산에 뿌리내린 나무를 위해 살았다


나무들이 산에서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조차 벅차서

산을 내려갈 때

그는 그 산의 뿌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운동이든 삶이든

산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무가 먼저 꺾이는 것을 알았지만

탓하지 않았다


그의 운동은 누구누구의 사상이나 

무슨 무슨 주의의 운동이 아니었다


조직화되지 않은 의식은 

밭고랑 하나 일구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내가 먼저 작심한 다음

모든 민중들의 입장과 태도로 

사는 것을 운동이라고 했다


민족 모순과 계급모순을 해소하면서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변혁이라고 했다


민족민주열사들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으로 

함께 나가는 것을 혁명이라고 했다


뿌리는 평생을 걸쳐 아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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