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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게시판

현다은 2023.12.01 16:36:12 24

사랑하는 의장님. 저를 기억하실진 모르겠으나 사실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의장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어쩐지 의장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고민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의장님은 호랑이처럼 강한 분이니까. 그런 분을 가까이 떠올리는 것으로도 저까지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랄까요. 

 

저는 여러 이유로 김해에 내려와있습니다. 내려와서 처음엔 적응을 잘 하지 못했어요. 부모님 몰래 매일 술을 마시기도 했고, 열두시간을 내리 잠만 자기도 했어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죽고싶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는데 그 생각이 또 싫기도 해서 술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또 술을 잔뜩 마시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낸 어느날, 엄마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우셨어요. 엄마는 울면서, 제가 손목을 긋고 피에 온 몸이 젖을 동안 본인은 출근하고 웃고 밥을 먹었다는 게 너무 화가나서 미칠 것만 같대요. 

그때부터 술을 조금씩 줄여갔어요. 

 

그러고나니 멀쩡한 시간에 하는 생각들이 자연히 많아졌어요. 저는 원체 생각이 많기로 유명한 타입의 사람이거든요. 너무 불안했어요. 사람들이 서울에서 열심히 할수록 저는 제가 초라해져간다고 생각했어요. 난 지금 뭘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죠. 또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내가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웠어요. 저는 왜 이렇게 쓸모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아 근데 사실은 알아요. 쓸모가 없으면 버려질 것 같은 환경에서 계속 자라왔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제와선 그게 뭐? 싶어요. ㅎㅎ

 

그런데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말하면 쓸모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해선 안된다고 충고를 받았어요. 그게 또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거예요. 그냥 “넌 필요해” 라고 한 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은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의장님도 이런 마음을 느낀 적이 있으실까요? 필요한 곳을 스스로 찾아갔던 의장님께선 못 느꼈을, 못난 마음인 것 같아요. 

 

그래도 시간은 흐르더라고요. 점차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의사선생님도,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지 말고 그냥 회복에 집중하라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또 시간이 가니,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서운해졌어요. 나도 다른 치들과 같이 아파서 내려온 건데 왜 괜찮냐, 잘 지내냐, 별일은 없냐 연락이 없을까 원망했어요. 

 

그런데 또 지독한 공안탄압으로 인한 일들이나 갇혀계신 분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며 빈자리를 채우고 있을 동지들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걸 생각하게 된 건, 지하언니가 제게 “사람들의 바쁨이 네게 상처가 된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게요. 당연한 말인데 그냥 머리가 얼얼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마침 그날 지하언니에게 서운함을 담은 장문의 글을 보낸 터라 부끄럽기도 했죠. 

뭐랄까, 그제야 사람들의 애씀이 보였어요. 언젠가 저도 겪은 적이 있었던 그런 애씀을 제대로 마주보았달까요. 계속 그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거든요. 건방지게도, 제가 없는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게 아니꼬왔어요.

이 징글징글한 과한 자기애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내내 고민하는 중이에요. 

 

의장님께서 이런 저를 보시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의장님을 먼발치에서만 뵈었어서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의장님 입장에선 아주 까마득한 후배의 일이기에 더욱 다정하게 말씀해주셨을 것 같기도 해요. 호되게 비판을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다정한 위로를 해주셨을 거라 믿을래요. 

 

의장님, 저는 같이 일하는 동지들에게 네 삶이 먼저다 이야기하면서 막상 제 삶을 돌보진 않았어요.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 모르니 찾기 쉬운 술에 기대고,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이 다 무겁게만 다가오니 힘겨웠어요. 내가 나의 무엇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게 힘들어했나. 이젠 알아요. 저는 저의 행복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문제들을 바라보니 많은 것들이 해소됐어요.

아,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조금 낯선 카페에서 책을 읽는 걸, 사진을 찍는 걸 행복해하는구나.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술이 없어도 나는 행복하구나. 

 

나를 둘러싼 문제는 쉽게 볼 건 아니지만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구나. 

손목을 그었던 것도 술에 의존한 것도. 가족이 폭력적인 것도, 어렸을 때 당했던 여러 일들도. 상처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지난 일이구나. 그럼 내가 해야할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거구나. 더이상 손목을 긋지말자. 술김에 칼을 들지말자. 

 

그거 아세요 의장님? 살이 물렁물렁하긴 해도, 같은 칼로 계속 손목을 그으면 칼날이 무뎌져요. 무뎌진 칼날을 자를때마다 새로운 칼날에는 꼭 내가 죽길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었어요. 

이젠 무뎌져서 잘려나간 칼의 갯수만큼은 충분히 고민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새 칼을 봐도 죽음을 다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꼭 그렇게 되길 바라요. 

 

저를 적당히 연민하고 적당히 미워하고 적당히 사랑하면서,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땐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셨을 의장님의 손을 기억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동지들의 마음과 동지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을거예요. 각자가 처한 입장과 위치가 달라 생길 수 있는 마음은 그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한다면 이해될 수 있는 마음이니까. 

해봤자가 아니라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장님의 말씀은 제 삶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믿어요.

 

의장님. 쓰고보니 의장님이 보고싶어요. 정말로 따듯한 위로를 의장님께 받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그를 대신해 동지들과 많은 것들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모두 의장님이 가진 것들을 물려받고 나눠가진 사람들이니까요. 

 

늘 마음에 품고 떠올리며 지냅니다. 

저도 다시 어느 곳에서건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날까지, 잘 지켜봐주세요. 사랑합니다.

추모제가 끝나고도 이 마음이 유지되길 바라며, 추모제가 끝나고 혹시라도 약해진 마음을 길들일 수 있도록 미리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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